The Third Chapter : Interview with PIRO (Korean ver.)
모든 예술가에게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중심이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회화와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지는 PIRO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그녀가 무엇을 바라보고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가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이번 「The Core Message」에서는 PIRO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작품이 질문으로 세상에 놓이기까지 이어지는 생각과 과정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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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시작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작가님은 스스로를 어떤 예술가로 정의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요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A. 안녕하세요, 영화 만들고 그림 그리는 피로입니다. 작가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정의 내리는 건 평생 못 내는 숙제와 같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서 늘 주변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영화와 이어진 곳에서 저는 감독이고, 그림과 전시로 연결된 곳에서 전 작가가 되겠죠. 작업들의 테마는 전부 동일하지 않아요. 다만 ‘내가 흥미를 가지는 세상의 어느 지점’이라는 비슷한 단상에서 출발합니다.
Q. 이번 챕터의 주제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닻」 혹은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앞서 말한 것과 그대로 이어지는데요. 절대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 동료, 언어, 이웃, 애인, 가족 그리고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사람에 대한 흥미라고 생각합니다. 통상적으로 ‘메세지’ 라는 것은 송신자와 수신자가 명확하고 그 안에 담긴 내용에 정보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제가 채택한 메세지는 기호(이미지)로 똘똘 뭉친 암호 같아요. 한마디로 아무 기능이 없는 스팸 문자 같은 거죠. 계속 세상에 엉킨 실타래를 내 놓는 기분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하나 둘 풀어내거나, 발로 차거나, 간직하거나, 길게 늘어트리는 모든 상호작용을 사랑합니다.
Q.작가님의 작품 중 이러한 「핵심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담겨있다고 느끼는 특정 작품이 있을까요?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왜 그 작품이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A. 올해 진행한 개인전 <21세기 총구>로 예로 들면, 야 타! Ride on Time라는 작품을 꼽을 것 같아요. 기학적인 도식과 빨강 파랑이라는 단순한 색감, 거기에 안전벨트를 이어 붙인 작업인데요. 모든 선택과 조합에 그 어떠한 논리가 없습니다. 사각형이 아닌 나무판을 구했고, 차 부품을 넣고 싶었고, 운동성이 느껴지는 제목을 지었어요.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아도 야 타! 라는 제목과 작품 간의 시너지가 흘러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신기하게 전시에서도 이 작품이 가장 인기가 많았어요.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 가 봅니다.
야타! Ride on Time |
야타! Ride on Time |
Q. 때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눈에 보이기보다 감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더라도, 작가님의 작품 안에 관람객이 감지하기를 바라는 ‘속삭임’이나 미묘한 분위기가 있을까요?
A. ‘야 타’ 이야기가 나왔으니, 또 자연스레 이어 갈게요. 저는 제목에 많은 비중을 둡니다. 물리적인 작품이 밋밋한 케이크 시트라면, 제목은 저에게 있어 각종 과일과 장식으로 케이크를 꾸미는 거랑 같아요. 그만큼 제목은 작품의 포인트가 되고, 어떻게 보면 작품을 은폐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글과 영문 제목도 대부분 상이하게 하는 편이예요. 영문이 한글을 번역하지 않도록 하는 거죠. 제가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두 언어이기도 해서 작품과 알맞는 최적의 뉘앙스를 찾아요. ‘야 타!’ 도 한국인만 바로 캐치가 가능한 음절의 조합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영문 제목도 ‘Right on Time’을 ‘Ride on Time’ 으로 한번 꼬아주는 거죠. 말장난이 난무하는 삶입니다.
| perfect sync |
Q. 예술가는 종종 어떤 질문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작업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든 관계없이, 작가님이 예술을 통해 세상에 혹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A. 저에게 작업하기란, 세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 ‘이게 맞아?’ 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너가 보는 게 맞아? 생각하던 게 맞아? 판단한 게 맞아? 참고 넘어간 게 맞아? 분노한 게 맞아? 좌절한 게 맞아? 환희에 차오른 게 맞아?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하기는 참 피곤하고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겠죠. 앞서 말했듯 제가 던지는 질문은 세상을 향한 스팸 문자입니다. 질문에 내용(정보)이 없어요. 그러니 저를 포함하여 제 작품을 보는 타인은 각자 상황과 입맛에 따라 답장을 하면 되는 거죠.
내비도 Let her leave |
Q.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작가님만의 호흡을 유지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A. 내면의 목소리라…사실 내면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저의 작업 방법론이자 동력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 일상을 살아가며 감각한 것들을 평평하게 펼쳐내기에 더 바쁜 것 같아요. 그래서 트렌드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트렌드를 놓친다는 건 따라갈 엄두라도 있는 상태에서 적용되는 말이잖아요. 예전에 좋아하는 시니어 작가님께서 제 작업을 보더니, ‘23살짜리 애기가 모더니즘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시대를 역행한다는 소리가 아닌, 유선이의 작업은 시대가 불분명하다.’ 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아직까지 이 말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 삶에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 되어준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애매하게 시대 흐름에 따라가면 그건 필히 올드해지기 마련인데, 아예 한 세기 정도 차이가 나면 마음 편히 작업할 수 있습니다.
| 지극히 반복되는 낯섦 Haven't we met before? |
Q. 작업을 하시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내가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드디어 성공적으로 담아냈다'라는 확신을 주는 작가님만의 특별한 순간이나 감각이 있나요?
A. 작업을 하면서 지극히 반복되는 일종의 패턴이 있습니다. 처음에 떠오르는 어떤 인상이 있고, 굉장히 또렷해요. 그러나 실제 재료를 통해 만들기라는 행위를 거치면서 구체적이고 선명하던 인상이 박살 납니다. 슬퍼요. 바로 이때 이 좌절감을 견뎌야만 다시금 인상과 현실에 놓인 작품이 매칭되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이게 회화의 마법인 것 같아요. 영화 작업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상이 있는데, 각본에서 한번 죽고, 촬영장에서 약간 숨이 붙었다가, 편집과정에서 부활하는 거죠. 물론 영화에서의 이런 재탄생은 회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과정이 길고, 다채롭고 짜릿합니다. 영화는 혼자 만들지 못하니까요.
Q. 완성된 결과물을 떠나, 「창작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작가님의 개인적인 가치관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소중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창작행위 자체는 가치관보다 본능에 더 가까워요. 저의 가치관은 그 본능에 충실한 결과(작품)에서 묻어납니다. 창작행위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저를 관찰카메라로 찍으면 ‘쟤는 대체 뭐하나?’ 싶을 거예요. 책상에서 끄적거렸다가, 캔버스에 휘적거리고, 드러누워서 이미지 찾다가, 나무 조립했다가, 음악 들으면서 춤추거든요. 저는 모두가 ‘무의미적 행위’ 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는 거랑 달라요. 행위가 명백히 쓸모없어야 하고, 계속 움직여야 해요. 이런 행위가 삶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창작자들이지 않을까요.
Q.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미적인 고민을 넘어 작업에 담고자 하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나 경험이 있었나요?
A. 근 5년간의 작업 흐름을 보면, 점점 단순해지고 선명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침묵해야 된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씩—정말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솔직히 그림은 너무나 오랫동안 저와 함께한 친구고 이제는 거의 20년지기 부부 사이입니다. 친숙하고 사랑하지만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회화에서 침묵의 맛을 본 이후 그림 그리기가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영화 작업에서의 경험도 빗대어 보자면, 현재 완성 예정인 첫 연출 작 <21세기 믿음>도 원래는 내레이션이 있었는데요, 전부 뺐습니다. 예술에서 과한 설명은 마치 무거운 책가방을 맨 것 같아요. 어깨를 가벼이 해주고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저에게도, 작품에게도!
| 위계 Hierarchy |
| 재발 Please |
Q.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이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시나요? 작품을 떠난 후에도 마음에 남기를 바라는 ‘울림’은 무엇인가요?
A. 꼭 무언가를 찾아야 하거나, 눅진한 감상평을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감상이 단순해도 좋으니 그냥 느끼세요. 그렇다 한들 제 작업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고질적 현대미술의 문법에 속하지도 않으니까요. 작품의 해석에는 정답이 없을 뿐 틀린 건 존재합니다. 다만 인상 깊었던 감상평을 공유하면,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서 좋은데 싫다, 슬픈데 웃기다, 따스한데 차갑다 등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로 뭉쳐진 느낌이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 21세기권총 21C Pistol |
Q. 마지막으로 이번 대화를 마무리하며, 작가님의 작품을 마주하게 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 PI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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