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Chapter : Interview with Haerin Yu (Korean ver.)
이번 인터뷰에서는 물과 흑연을 매체로 우연성을 받아들이며 대상을 천천히 그려가는 유해린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재료의 흐름과 우연을 따라 형상을 만들어가는 그녀의 작업과, 그 과정에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번 「The Core Message」에서는 유해린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그녀의 작업을 움직여 왔는지, 그리고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도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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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시작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작가님은 스스로를 어떤 예술가로 정의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요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물과 흑연을 매체로 우연성을 수용하며 대상을 어루만지듯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림책을 쓰는 유해린 작가입니다.
Q. 이번 챕터의 주제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닻」 혹은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물과 흑연의 입자를 섞어 스케치 없이 종이 위에 부은 뒤, 서서히 형상을 만들어갑니다. 흐르고 맺히다가 대상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우연성 안에서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제가 개입할 수 있을 때 약간씩만 개입하며 이미지를 형성해나가집니다. 그러다 보면 뚜렷한 경계는 사라지고, 입자들이 조금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 가까워지기도 하며 눈이 되고, 코가 되고, 입이 됩니다. 가장 깊게 어두워지는 부분이 눈이 되는데, 긴 터널 끝에 빛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물의 눈빛을 긁어내어 눈빛을 만듭니다. 이런 작업 과정에서 현재 저를 붙잡아주는 중심이라면 '수용함'이라는 태도 같습니다.
Q.작가님의 작품 중 이러한 「핵심 메시지」가 가장 선명하게 담겨있다고 느끼는 특정 작품이 있을까요?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왜 그 작품이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A. 지금 저의 회화는 매체 속에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카메라 앞에 섰어야 했던 과거의 인물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 한 작품 안에 선명하게 어떤 메시지를 잘 담아냈다기보다는, 제가 작업하고 있는 연작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함께 호흡하고 있습니다. '타자를 어떻게 해야 나의 관점에서 잘 헤아릴 수 있을까?' 최대한 다각도에서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응시해보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대상을 그리더라도 저에게는 지루함이 없으며, 매번 새로운 이미지가 종이 위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숨결, 2025 종이판넬에 흑연,물,목탄,혼합 80x80cm |
바람의 각인, 2025 91x61cm 종이판넬에 흑연,물,목탄,혼합 |
Q. 때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눈에 보이기보다 감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더라도, 작가님의 작품 안에 관람객이 감지하기를 바라는 ‘속삭임’이나 미묘한 분위기가 있을까요?
A. 사람들의 눈빛에 담긴 어떤 것, 자연의 섬세한 모습 속에 담긴 것들, 아직 문장이나 단어가 되지 못한 어떤 감각들이 저를 종이 앞으로 이끌어줍니다. 그 안에서 한 가지 선명해지는 것은 존재를 보듬어주려는 태도 같아요. 종이 위로 번진 흑연 입자들과 손길, 붓질의 흔적 안에 타자를 향한 연민과 어루만짐의 정서를 남겨놓고 싶습니다.
| Haerin Yu |
Q. 예술가는 종종 어떤 질문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작업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든 관계없이, 작가님이 예술을 통해 세상에 혹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바람, 2025 종이에 혼합재료 53x41cm |
A. 저도 신진 작가로서 트렌드 앞에서 흔들림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은 예술가에게 당연히 있으니까요. 하지만 홀로 걷는 것 같아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제 앞에 놓인 나만의 길을 걷는 용기가 없다면 예술이라는 본질적 의미가 저 자신에게는 무의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불안을 극복하며 그 길을 걷는 것이 세상을 향해 취할 수 있는 희생적 태도라 생각하며 노력합니다. 그것이 시대와 잘 맞게 된다면 너무나 기쁘겠지만, 조금 어긋나더라도 힘을 내어 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저는 흔들릴 때마다 그림을 그려내는 손을 바라보던 시선을 발로 돌려봅니다. 결국 '내가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그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모르는 얼룩, 2025 종이에 혼합재료 73x73cm |
머무는 자리, 2026 116x90cm 종이판넬에 흑연,물,목탄,혼합 |
A. 처음에는 대상이 품고 있을 감정에 몰입하며 물과 흑연을 다루었습니다. 그러다 종이 위에서 흑연과 물이 함께 흐르는 과정 중에 맺히는 '바람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회화는 시간을 고정시키는 힘이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화면 안에서 바람이 불면 대상에게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최근에 작업하고 있는 〈세상의 숨결〉 연작에는 그렇게 바람의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빛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 〈아직 모르는 얼룩〉 연작에는 서서히 색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빛은 곧 색이니까요.
Q. 완성된 결과물을 떠나, 「창작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작가님의 개인적인 가치관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소중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A. 물이 흐르는 과정을 따라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떤 때에는 해방감을 주지만, 어떤 때에는 '한번 그려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압박감을 줍니다. 물은 손으로 만지면 마치 가벼운 듯 느껴지지만, 강한 힘으로 흑연의 입자들을 품고 흐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삶에 벌어졌던 모든 일들과 곁에 있었던 인연들에 대해 지우려 하기보다는, 그 모두가 저에게 남아 저를 형성해간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다루게 된 작업이라 여겼는데, 어느 순간 저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작업 방식이 병렬적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Q.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미적인 고민을 넘어 작업에 담고자 하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 계기나 경험이 있었나요?
A. 전시를 진행할 때,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눈빛을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가 설명하기도 전에 관람객분들은 그림 안에서 이미 많은 것들을 감각하고 계셨습니다. 저의 모든 시도들이 그대로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윤리적 책임의식에 기반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제 안에 떠오르는 질문들은 시간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고, 작업에 담기는 이야기는 결국 그런 저로부터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로서 좋은 작업을 하려면, 결국에는 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아드 갤러리 유해린 전시풍경 |
호아드 갤러리 유해린 전시풍경 |
Q. 작업이 계속되면서,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거나 더 선명해져 왔나요?
A. 저는 얼마 전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개인전을 열었던 호아드 갤러리는 긴 복도 끝에 창을 품은 공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30여 점의 작품을 한 공간에 펼쳐볼 기회를 얻었지요. 설치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가 그리는 대상의 상태가 서서히 변화해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성을 따라 작업을 하다 보면 형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림을 망칠까 두려워 에스키스(초안) 작업을 여러 번 시도해보기도 합니다. 결국 제 몸이 그림의 흐름을 따를 준비가 되어야 본 작업에 돌입하는데, 저의 몸짓을 따라 그림이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대상 안에 담긴 영혼만큼은 훼손할 수 없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어떤 것. 나약해 보이기에 쉽게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단단한 구심점이 있기에 흔들릴 힘도 있다는 것. 이런 생각들은 작업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선명해져 갑니다.
Q.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이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어떤 대화를 나누기를 바라시나요? 작품을 떠난 후에도 마음에 남기를 바라는 ‘울림’은 무엇인가요?
A. 저의 작품을 보신 분들께 정말 다양한 피드백을 듣고는 합니다. 저는 그저 그 앞에 머물러주시는 것 자체로 감사해요. 그럼에도 가끔 그림 자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라거나, 흉내 내는 감정이 아니라 진짜 "감정 같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너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저의 작업이 관객 모두에게 각자 다르게 다가가는, 어떤 '비언어적인 질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끝의 볕, 2026 53X41CM 종이에 혼합재료 |
Q. 마지막으로 이번 대화를 마무리하며, 작가님의 작품을 마주하게 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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