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뮤즈’를 탐구하는 이번 여정의 일곱 번째 대화는 다학제적 예술가 네리스(Neryhs)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홍콩에서 태어나 런던과 멜버른에서 수학한 이 작가에게 창작이란 깊은 취약성을 드러내는 행위이자, 개별적인 정신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간극을 잇는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입니다.
네리스의 작업 세계는 가슴 뭉클한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인간의 갈망과, 완전한 연결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인식 사이의 대립이 그것입니다.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생존 모드'의 시간을 지나온 그녀는 이제 예술을 단순한 미적 추구가 아닌, 필수적인 '치유'의 형태이자 삶에 건네는 '무조건적인 사랑'의 그릇으로 바라봅니다. 그녀의 작업은 고독의 무게를 자기 발견이라는 확장된 자유로 변모시키며,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고요하지만 강력한 선언이 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 네리스는 최근의 변화를 상징하는 작품 <27th>를 통해 자신의 진화를 반추합니다. 이 작품은 삶의 한 계절을 마무리하는 '종착선'이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출발선'이 되는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알아차림(noticing)'이라 설명합니다. 예술가는 명료함의 불꽃 속으로 용기 있게 뛰어들어 무의식 속에 숨겨진 진실을 들추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리스에게 캔버스와 설치 공간은 상처를 선명하게 마주하는 장소이며, '회화적 은유'를 통해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던 것들이 비로소 형상을 갖추게 되는 공간입니다.
관객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 또한 인상적입니다. 예술을 '사랑'과 유사한 무엇으로 보는 그녀는, 작품의 의미가 관객 각자의 고유한 지각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이는 작가의 본래 의도를 넘어선 대화이며, 우리 모두를 그녀가 남긴 파편들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발견하도록 초대합니다.
작가의 정직함과 회복력에 대한 깊은 존중을 담아 편집된 이 대화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한 예술가의 여정을 목격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가장 개인적인 고통이 어떻게 희망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정제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가장 깊은 고독 속에서도 예술이 어떻게 우리를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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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을 뵙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먼저 작가님에 대한 소개와 작업 세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예술가로서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 그리고 현재 어떤 작업에 몰두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다학제적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네리스(Neryhs)입니다. 저의 작업은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이해해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인간 정신 사이의 완전한 이해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사이의 모순을 탐구합니다. 이러한 사유를 시, 회화, 일러스트레이션, 공공 설치 미술, 그리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홍콩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 예술대학교(UAL) 첼시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순수미술 학사를 우등 졸업(First Class Honours)했고, 2024년에는 RMIT 대학교에서 공공 미술 석사 과정을 우수한 성적(Distinction)으로 마쳤습니다.
저에게 예술 작업은 일종의 '치유'이며, 제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시간'과도 같습니다. 저는 줄곧 인간과 고독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고독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지만, 우리가 스스로와 더 깊게 연결될수록 그 고독은 비로소 '자유'로 변모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예술을 통해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 이야기들은 제 삶의 파편들이기도 하죠. 일상적인 대화로는 도저히 흘려보낼 수 없거나 표현하기 힘든 감정 혹은 아이디어를 마주할 때, 저는 그것들을 예술이라는 형상으로 빚어냅니다. 저에게 예술은 '사랑'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때 예술은 비로소 타당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심지어 영감을 주기도 하죠. 하지만 이해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작품을 제시할 뿐, 그 나머지의 몫은 관객들에게 맡깁니다.
저에게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제가 삶에 건네는 일종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sink, dream, die with me
Q.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의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그 특별한 뮤즈가 작가님께 처음 의미 있게 다가온 순간은 언제였는지, 당시의 첫 만남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지난 몇 년은 제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꽤나 힘든 시기였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예기치 못한 트라우마들을 겪어야 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생존 모드'에 돌입해 있었죠.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데까지만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과거의 삶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안의 예전 제 모습도 함께 죽어갔습니다. 저는 제 앞에 놓인 미지의 시간을 마주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자아를 구축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해체와 재탄생의 과정이었고, 그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고통을 다루는 데 있어 제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예술뿐이었고, 저는 기꺼이 그 길을 택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삶에서 겪은 모든 투쟁과 상실, 그리고 트라우마들이 이제는 저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적이고 내밀해졌죠.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은 예술적 여정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어떤 길은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을 실험하게 했고, 또 어떤 길은 과거의 작업 방식을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저는 예술이라는 실천을 통해 저 자신을 성장시키고 다시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Q. 그 영감의 원천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그 경험 이후 작가님의 예술적 방향성이나 작업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예술가들에게 삶의 고뇌와 투쟁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으며, 이는 결코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고난은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자극제이자 동력이 되어왔죠. 우리 인류가 역사 속에서 마주한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진화해 온 것처럼, 고통에 반응하며 발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저 역시 제가 겪은 고통과 시련에 반응하며, 이를 극복하고 진화하려는 노력을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람마다 그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예술을 창조하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지극히 자연스럽게 체득해 온 저만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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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lay - trauma bond. (oh honey, it was never really love.) |
Q. 작가님께 뮤즈는 주로 어떤 형태로 다가오나요? 시각적인 이미지인가요, 아니면 소리나 공간의 기류, 혹은 특정한 감정인가요? 그 영감이 지닌 구체적인 특징이나 성격에 대해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 '느낌'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저마다의 무게를 지닌, 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이 남기는 그 느낌들을 포착하려 노력합니다.
사실 여러 면에서 삶은 제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대상입니다. 머릿속에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쌓여만 가죠. 하지만 가끔씩 예기치 않게 '명료함의 불꽃(spark of clarity)'이 일렁이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주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의문들이 비로소 실마리를 찾으며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불꽃을 놓치지 않고 붙잡습니다. 그것은 제게 영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거든요. 그때부터 저의 역할은 용기를 내어 그 심연 속으로 깊이 뛰어들어, 그 길이 저를 어디로 이끄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Q. 작가님의 뮤즈를 가장 강력하게 구현하고 있는 특정 작품 한 점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초기 영감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어떠했는지, 그 과정에서 마주한 도전이나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지난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던 관객 참여형 설치 작품 <from______to _____。>를 먼저 꼽고 싶습니다. 저는 이 작업을 '레드 테이프(Red Tape)' 시리즈의 진정한 시작이자 가장 날 것의 형태라고 보기에, 여전히 제 마음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 저의 예술적 실천(Practice)에 있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27th>라는 신작이 있습니다. 제 나이에서 이름을 딴 이 작품은, 삶의 이전 단계에서 지금의 새로운 단계로 넘어오기까지의 매우 개인적인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마다 성장하고 변화하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믿으며, 그 과정 중에는 유독 잊히지 않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7th>는 단순히 저의 스물일곱 번째 해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삶의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종착선'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즌을 여는 '출발선'을 의미합니다.
작업 과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27th>는 시, 시나리오, 회화 등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실험하느라 몇 년간 손대지 않았던 '레드 테이프' 시리즈를 다시 방문하는 여정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와 관점을 가지고 과거의 시리즈를 다시 마주하는 것은 묘하면서도 흥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저는 제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은유를 사용하는 법, 심지어 붓질조차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하려 애쓰는 대신, 변화한 지금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죠. 작업을 이어가며 저는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훨씬 더 세밀해졌으며, 명확한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각 요소들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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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th |
Q. 시간이 흐르면서 뮤즈와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부분이나, 새롭게 발견한 지점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이제는 영감을 다루는 저만의 방식을 신뢰하는 일에 훨씬 더 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영감의 불꽃이 튀어 오를 때면 무척 긴장하곤 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을지, 혹여나 귀한 영감을 낭비하지 않고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불안해했죠. 작품 하나를 마칠 때마다 다음에도 이만큼 좋은 영감을 얻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성장하며 깨달은 것은, 그러한 불안은 그저 저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그 불안에 저를 괴롭힐 힘을 내어주지 않는 한,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상과 싸우는 것과 같았죠. 그래서 이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모든 세부 사항을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대신 작품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고, 과정 속에서 개선해 나가며, 때로는 스스로 실패할 기회도 허용합니다. 또한 어떤 아이디어들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단지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작업을 몰아붙이기보다, 때로는 미완성인 채로 두는 법을 익힌 것이죠. 훗날 더 적절한 시기에 그 작업을 다시 마주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이는 비단 예술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도 적용되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Q. 영감과 연결되기 위해 일상 속에서 특별히 기울이시는 노력이 있으신가요? 혹은 영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정체기를 지나보내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저에게 영감과 연결된다는 것은 곧 ‘알아차림(noticing)’의 실천입니다.
주변의 사물이나 일어나는 사건들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죠.
저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의식하려 노력합니다. 스스로 이해하기 쉽도록 감정을 세밀하게 분해해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예술 작업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제가 저의 예술적 실천을 ‘치유(Therapy)’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에게 삶이란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 치유와 진화의 연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Q. 작업을 하시다 보면, 뮤즈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 도달하거나 힘겨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작가님 자신 혹은 본인의 작업 방식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저는 우리 무의식 깊은 곳에 스스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외면해 온 수많은 진실이 잠겨 있다고 믿습니다. 뮤즈의 이끎에 따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자아의 일면을 드러내는 과정은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확장하는 커다란 축복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데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인 여정이기도 합니다.
저의 예술적 실천(Practice)은 대부분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찾아내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치유할 수 없었던 트라우마들을 들추어내는 작업입니다.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은 제가 그 상처들을 명확하게 마주할 수 있는 지점으로 저를 인도하죠. 어느 정도의 깊이와 명료함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창작은 제게 그저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할 뿐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실천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도전적인 과제를 안고 있어야 하며, 작품과 작가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늘 '미지의 경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결국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술적 실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관객들의 반응은 작가님과 뮤즈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관객을 통해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영감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게 된 경험이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A. 저는 관객이 제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그 작품에 대한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개념이 즉각적으로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예술이 사랑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때 예술은 비로소 타당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죠.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저는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고 지각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개념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저의 역할은 작품을 완성하는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그 이후 작품이 관객에게 공개되면, 그것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개별적인 정신들에 의해 동일한 작품으로부터 수많은 새로운 관점과 변주된 형태들이 창조되는 것이죠.
예전에는 관객들이 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할 때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예술을 통해 이해받고 연결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찾는 것이 여전히 저의 창작 동기이자 이유이긴 하지만, 이제는 각자의 정신이 지닌 고유한 독립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특히 관객들이 제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예상치 못한 시각을 들려줄 때, 저는 그 순간들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소통이자 연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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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惡有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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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h i saw what you have and i don't want it. |
Q. 예술적 본질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변화와 성장을 수용하는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혹시 뮤즈의 이끎과 외부의 기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순간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로서, 저의 핵심적인 영감에 충실하다는 것은 곧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때때로 매우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서, 이미 스스로는 그 단계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작업 스타일을 고수하거나 이미 지나간 아이디어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예술가에게 가장 위험한 함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아는 더 이상 머물지 않는 과거의 장소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 말이죠. 그렇기에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자신을 점검하고, 자신의 예술적 실천(Practice) 앞에 완전히 솔직해지는 것이 예술가로서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진정성(Authenticity)'은 첫 번째로 갖춰야 할 덕목일 뿐만 아니라, 평생의 여정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본질적인 가치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외부의 상황이나 기대가 작품에 특정한 요구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요구가 작품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훼손할 정도라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예술가는 자신이 지켜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명확히 알고, 소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Q. 오늘 작가님의 진솔하고도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작가님의 앞날을 그려보고 싶은데요. 앞으로 작가님의 뮤즈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거나 확장될 것이라 기대하시나요? 새롭게 탐험해보고 싶은 영감의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그곳이 작가님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저 역시 깊이 있는 사유와 탐색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대화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레드 테이프(Red Tape)' 시리즈를 통한 탐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특정한 사유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어 여전히 발전시킬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영감의 불꽃들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세상 밖으로 꺼내 보이고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 작업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와 미술관, 창작 지원 단체 등 다양한 플랫폼과 협력하여 작품을 더 널리 알리고, 규모 있는 작업을 위한 지원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대형 설치 미술의 형태로 구현했을 때 그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의 구상들을 실제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Contact
아티스트 : 워 네리스 (Wo Neryhs)
인스타그램 : @neryhs_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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