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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Chapter : Interview with Kavieng Cheng (English ver.)

This conversation marks the tenth interview in the series *'Defining Moments: The First Start or the Turning Moment'*. We meet Kavieng Cheng, a multidisciplinary artist from Hong Kong whose practice flows between the roles of artist, art director, curator, and fashion photographer. For Kavieng, these are not separate professions but shifting lenses through which she interrogates reality—art as a phenomenological mode of existence, a continuous practice of sensing the world and questioning the given. Her work operates as an archaeology of the micro-psychological, drawn to the pre-linguistic realm: gestures that occur before words form, tensions held in the body, and fragmented moments that escape the conscious filter. Working across print, wood sculpture, and laser-cut forms, she explores the paradox between organic warmth and violent precision—a duality that mirrors the human psyche, structured yet chaotic, resilient yet profoundly fragile. It was her high school teacher Ms. ...

백남준 - “텔레비전이 캔버스가 될 때”

 “TV를 접고, 펼치고, 찢어서라도 우리는 새 시대의 예술을 만들 수 있다.”

— 백남준, 1960년대 플럭서스 활동 중 남긴 글 일부(출처: 백남준아트센터 내부 자료)


1. 생애와 예술적 여정: 음악에서 전자미디어로

백남준(1932–2006)은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독일, 미국을 오가며 미디어 아트라는 전대미문의 예술 장르를 개척했다.

  • 유년기·음악 수업: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작곡에 재능을 보였고, 일본 니혼대학에서 서양음악사와 미학을 공부했다.
  • 독일 유학·아방가르드 음악: 뮌헨, 프라이부르크 등지에서 존 케이지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같은 전위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받으며, 기존의 음향 개념을 확장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 미디어 아트로의 전환: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참여해 음악과 퍼포먼스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펼치던 중, 텔레비전·비디오 카메라를 활용한 새로운 예술 매체에 몰입하게 된다.

“백남준은 쇼맨십을 갖춘 음악가였다.”
—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1960년대 초반 한 인터뷰에서

이 시기에 탄생한 **‘비디오 아트’**라는 개념은, 시청자들이 수동적으로 바라보던 TV화면을 작가와 관객이 함께 창작하는 예술 공간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2. 대표 작품과 현장 묘사: ‘보고, 만지고, 듣는’ 예술

(1) TV 첼로(TV Cello)

  • 1960~70년대 백남준이 음악가 샬럿 무어맨(Charlotte Moorman)과 협업해 완성한 설치·퍼포먼스 작품.
  • 첼로 형태로 배열된 TV 모니터 위에서 무어맨이 활을 그어 연주하듯 퍼포먼스를 펼친다.
  • 모니터 속 영상이 실시간으로 바뀌고, 소리 또한 왜곡되거나 증폭되면서 “시각적 음악”을 형성한다.
  •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봤던 관객 일부는 “TV 위에 사람이 앉아 활을 그어대다니!”라며 경악했지만, 이 도발적인 시도가 바로 **TV 매체에 대한 ‘아티스틱 해킹(artistic hacking)’**이었다.

(2) 로봇 K-456

  • 1964년경 제작된 로봇으로, 실제로 걷고 소리를 내는 기계 장치.
  • 백남준은 이 로봇을 뉴욕 거리로 내보내 인간과 기계가 함께 생활·소통할 미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 일부 언론은 이를 “기괴하고 불쾌한 광경”이라 평했고, 어떤 이들은 “단지 장난감 로봇에 불과하다”고 폄하했지만, 백남준은 “이것이야말로 인간-기계 융합의 서막”이라며 확신에 찼다.

(3)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 1984년 1월 1일, 전 세계 위성 방송을 연결해 뉴욕·파리·서울 등지에서 동시 생방송 퍼포먼스를 진행.
  • 냉전 시대라는 국제정세 속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예견한 디스토피아와 반대로 미디어가 창조적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 세계적인 음악가,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노래와 춤을 선보였고, 수백만 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하면서 “예술이 지구적 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3. 파격과 논란: “이것이 예술인가, 단순 쇼인가?”

백남준의 급진적 시도는 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 초창기 비판:
    • “기술 장난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나?”
    • “관객을 현혹하기 위한 쇼맨십에 불과하다.”
  • 백남준의 반론: “TV는 그림만큼 아름다운 캔버스가 될 수 있고, 로봇은 예술가의 가장 성실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 당시 독일의 전위 음악계와 뉴욕의 예술계는 그를 파격적이지만 **‘미래를 미리 맛보게 하는 예언자’**로 바라보기도 했다.

조경진(백남준아트센터 전 큐레이터)은 그의 작업을 “기술공학과 예술을 뒤섞어 ‘포스트휴먼 예술’을 미리 예견한 사례”로 해석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자료집, 2015


4. 미학적·이론적 배경: 플럭서스와 초연결 사고

  1. 플럭서스 운동

    • 존 케이지, 라 몬테 영 등과 함께 예술을 ‘누구나 즐기는 놀이’로 확장하려 했던 국제적 아방가르드 그룹.
    • 백남준은 이를 통해 “음악과 퍼포먼스, 시각예술의 벽을 허무는 실험정신”을 체득했다.
  2. 비디오 아트의 태동과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 백남준은 “인류가 전자적 경로를 통해 상호 연결될 것”이라 예견했고, 실제로 위성 방송과 영상 매체를 활용한 대규모 퍼포먼스로 이를 실현해 보였다.
    • 오늘날 SNS와 유튜브, 메타버스 등은 그의 예언이 디지털 시대의 일상으로 이어졌음을 증명한다.
  3.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 백남준은 기계를 ‘찬양’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대신 **“인간성을 확장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했다.
    • 이는 현대의 로봇 아트, AI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5. 독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만약 백남준이 지금 살아 있다면?”

기술이 더욱 발전한 21세기 초, 우리는 VR·AR·AI 같은 새로운 도구를 손쉽게 접한다.

  • 스마트폰 하나로 누구나 생방송, 영상 편집, 음악 믹싱, 심지어 로봇 제어도 할 수 있다.
  • “백남준이 현재를 본다면, AI와 메타버스를 어떻게 결합해 새로운 예술을 펼쳤을까?”
  • “여러분은 스마트폰으로 어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미디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환경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6. 역사·사회적 맥락: 냉전과 뉴미디어의 교차점

  • 1980년대 초·중반은 냉전 시대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이자, 케이블 TV·위성방송 등 뉴미디어가 막 꽃피우던 시기였다.
  • 백남준은 이 “이념적 갈등과 미디어 혁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예술을 통해 “세계가 한데 연결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파했다.
  • 그가 뉴욕과 파리, 서울을 동시에 연결한 퍼포먼스는 상징적으로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예술적으로 실현함과 동시에, 냉전 체제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는 실험이었다.

7. 결론: “기술은 우리의 새 피부가 될 수 있다.”

백남준은 **“기술이 인간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당시의 우려와 달리, **“기술을 통해 예술이 무한히 확장되고, 사람과 사람이 더욱 창의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스킨(Skin)은 이미 현실을 대면하기에 부족하다.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이제 인간에게 새로운 막(膜)이다.”
— 백남준, Nam June Paik: Writings on His Art 중에서

그의 비전을 압축한 **‘전자 초고속도로’**는 오늘날 인터넷, 스마트폰, SNS가 일상화된 시대를 꿰뚫는 예견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저 기술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술, 인간, 기계가 함께 새 언어를 만들어가는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 환경에서 영상을 만들고 공유하며, 가상공간에서 협업 퍼포먼스를 펼치는 순간들—그 모든 자리에는 이미 백남준의 실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결국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그저 화면에만 빠져 있지 말고, 과감히 그 화면을 예술의 재료로 삼아라.
그러면 미래는 스스로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참고 자료

  1.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자료집(2015), 37–52쪽.
  2. Dieter Daniels, Video Art Pioneers, Springer Wien NewYork, 2001.
  3.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Nam June Paik: Global Visionary 전시 카탈로그, 2012–2013.
  4. 조경진, 「백남준의 로봇과 포스트휴먼 미학」, 미디어아트연구 제8호, 2015.
  5. Tate Modern, “Nam June Paik and the Birth of Video Art” 전시 자료,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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